프랑스 부유세 논란, 유럽 최대 부호와 경제학자 간 격돌

2025.09.22
프랑스 부유세 논란, 유럽 최대 부호와 경제학자 간 격돌

프랑스 재정 위기 해결책으로 제기된 초부유층 대상 부유세 도입안을 둘러싸고 유럽 최고 재벌과 저명 경제학자 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LVMH 창립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21일 영국 선데이타임스를 통해 '주크만세' 설계자인 가브리엘 주크만 교수를 향해 "자유시장 체제 해체를 목표로 하는 극좌 성향 인물"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르노 회장은 성명에서 주크만 교수가 "허위 전문성을 앞세워 모든 계층에게 유익한 유일한 경제시스템인 자유주의를 파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과세 방안이 "기술적 또는 경제적 논의가 아닌, 프랑스 경제 붕괴 의도를 드러낸 정치적 공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포브스 기준 1570억 달러 재산을 보유한 아르노 회장은 자신이 "국내 최고 수준의 개인 납세자이자 최대 기업세 납부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논란의 중심인 부유세안은 1억 유로 초과 자산에 대해 2%의 재산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주크만 교수는 이 제도 시행 시 약 1800 가구에서 연간 200억 유로의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로이터 인터뷰에서 "여러 국가에서 최상위 부유계층의 실질 소득세율이 일반 시민보다 낮은 현실"을 지적하며 과세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주크만 교수는 X를 통해 아르노 회장의 비난에 즉각 반박했다. 그는 "본인을 겨냥한 발언들은 합리성을 벗어났으며 근거가 부족하다"며 "어떤 정치 운동이나 정당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한 "재정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학술 연구의 정당성을 공격하고 있다"며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는 시대에 세계 최대 부호의 이런 발언은 매우 유감"이라고 맞섰다.

'21세기 자본' 저자 토마 피케티의 제자로 알려진 주크만 교수는 현재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파리경제학교 석좌교수, UC버클리 여름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AFP에 보낸 입장문에서 "근본적 견해 차이는 존재할 수 있고 아르노 회장도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지만, 토론은 진실과 사실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부유세 논의는 프랑스가 440억 유로 규모의 누적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긴축 정책을 추진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대규모 시위와 정치적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사회당 등 좌파 세력은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삭감 대신 부유층 증세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이은 내각 붕괴 후 새로 취임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는 좌파의 협력 없이는 정부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좌파 정당들은 내년 예산안에 주크만세 반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마크롱 대통령 소속 르네상스당도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부유세 도입이 초고액 자산가들의 해외 이주를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과거 올랑드 정부의 부유층 재산세 강화 시도는 영국 등지로의 자산 이전으로 인해 기대했던 세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는 예상 세수가 50억 유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편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의 86%가 부유세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부유세가 아니라 국가 지원은 받으면서 연대 의무는 거부하는 초부유층의 애국심 부재"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