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영화계의 거장이자 배우, 연출가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16일(현지시각) 오전 8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홍보 대행사 로저스&코완 PMK의 신디 버거 CEO는 이날 성명을 통해 레드퍼드가 유타주 자택에서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사망 경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1936년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출생한 레드퍼드는 1960년대 브로드웨이 무대를 거쳐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작품은 1969년 폴 뉴먼과 함께한 서부극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였다.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선댄스 키드' 캐릭터는 훗날 그가 창설한 독립영화제의 명칭으로도 사용됐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해 레드퍼드는 할리우드 최정상 스타로 군림했다. '사기꾼들'(1973), '추억'(1973), '위대한 개츠비'(1974), '콘돌'(1975), '대통령의 모든 사람들'(1976),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1985) 등 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연기력과 상업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특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메릴 스트립, 제인 폰다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과의 호흡을 통해 로맨틱한 매력을 발산했다.
단순한 미모의 스타에 그치지 않고 작품성을 추구한 그는 1980년 연출 데뷔작 '평범한 사람들'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연출가로서의 역량도 입증했다. 이후 '강가에서'(1992), '퀴즈 쇼'(1994), '말 속삭이는 사나이'(1998)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하는 진중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레드퍼드의 영화계 기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댄스 영화제 설립이다. 1981년 신진 영화인 육성을 위해 선댄스 인스티튜트를 창립한 그는 1984년부터 유타주 파크시티의 작은 영화제를 인수해 현재의 선댄스 페스티벌로 키웠다. 이 플랫폼을 통해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대런 아로노프스키, 클로에 자오 등 세계적인 감독들이 배출되며 미국 독립영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외적으로도 그는 활발한 사회 참여를 보였다. 천연자원보호협회 이사로 30여 년간 활동하며 환경보호에 앞장섰고,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전을 위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1970년 유타 고속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을 시작으로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저지 등에 적극 나섰다.
최근까지도 그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 넷플릭스 영화에서 50년 만에 제인 폰다와 재회했고, 2019년 마블 영화에 특별출연하는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은 지난 3월 방영된 드라마 '다크 윈즈' 시즌3이었다.
레드퍼드는 2002년 오스카 평생공로상, 2016년 대통령 자유메달 등을 수상하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60여 년간 할리우드에서 배우, 연출가, 제작자로 활약하며 쌓은 그의 유산은 대중문화와 영화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