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당국이 제2차 세계대전 손해배상으로 1조3천억유로(약 2천120조원)를 지급하라는 폴란드 측 요구를 또다시 거부하며 군사적 안보 지원을 통한 해결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16일 공식 방문길에 나선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배상 이슈는 이미 법적 해결이 완료되었다는 기존 견해를 되풀이했다.
베를린 정부는 1953년 바르샤바 당국의 배상권 포기 선언으로 전후 정산이 마무리되었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 보수 세력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압력하에 이뤄진 청구권 포기 결정은 법적 효력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우파 성향의 법과정의당은 2022년 나치 독일로부터 받은 피해 규모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천문학적 규모의 보상금 지급을 공식 요청했다.
나브로츠키 신임 대통령은 독일 빌트지와의 대담에서 "철저하고 학술적 근거에 바탕을 둔 연구를 통해 산출된 금액"이라며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논의"라고 강조했다. 역사학자 출신인 그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때 잠잠했던 배상금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독일측은 현실적 대응 방안으로 군사 및 안보 분야 협력 확대를 내세웠다. 크누트 아브라함 연방정부 폴란드 특임관은 "독일의 책무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며 "과거 폴란드가 피해를 당했다면, 이제는 양국이 상호 보호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적, 재정적 지원이 진정한 해답"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일은 러시아 무인기의 폴란드 영공 침입으로 안보 위기가 심화되자 유로파이터 전투기 2대를 추가 파견하고 공중 감시 임무를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회담에서 "대전과 점령의 비극 이후 폴란드와의 화해 증진은 우리 정부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폴란드는 러시아발 사이버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다리우시 스탄데르스키 디지털부 차관에 따르면 폴란드는 매일 20∼50건의 핵심 인프라 사이버 공격을 받고 있으며, 실제로 병원 시스템이 마비되고 의료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주요 도시의 급수 시설을 겨냥한 해킹 시도도 있었다. 이에 따라 폴란드 정부는 올해 사이버 보안 예산을 전년 6억유로에서 10억유로로 대폭 늘렸다.
그러나 즈비그니에프 보구츠키 폴란드 대통령실장은 "폴란드 국익에 핵심적인 사안"이라며 "독일의 전쟁 범죄가 언제 일어났든 배상금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