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공항들의 항공편 운항 지연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전국 14개 공항에서 발생하는 항공편 지연 비율이 최근 4년간 급격히 증가하면서 승객들의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배준영 의원(국민의힘·인천 중·강화·옹진)이 공항공사와 소비자원에서 확보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14개 공항의 운항 지연 비율이 2020년 4.3%에서 2024년 21.3%까지 치솟았다고 21일 발표했다. 이는 불과 4년 만에 약 5배나 급등한 수치다.
연차별 추이를 살펴보면 2021년 6.7%, 2022년 7.7%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3년 22.7%로 급격히 뛰어올랐다. 금년도 8월까지의 집계에서도 18.7%의 높은 지연율을 나타내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항별 현황을 보면 포항경주공항이 33.0%로 가장 높은 지연율을 기록했으며, 사천공항 32.6%, 군산공항 30.3% 순으로 나타났다. 주요 거점공항인 제주공항도 22.2%의 지연율을 보였고, 김포공항 22.0%, 김해공항 19.8%를 각각 기록했다. 금년 1월부터 8월까지의 데이터에서도 원주공항 29.1%, 군산공항 28.2%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운항 지연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또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5년간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접수된 항공편 지연 관련 민원은 총 4,733건에 달했으며, 매년 천 건 내외의 상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소비자원에 정식 피해구제를 신청한 사례가 1,385건에 이른다는 점이다.
구제 신청 건수를 연도별로 분석하면 2021년 30건에서 시작해 2022년 172건, 2023년 344건, 2024년 524건으로 매년 대폭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으로도 315건의 신청이 접수되었다. 주요 피해 내용으로는 운항 지연에 따른 숙박비와 교통비 손해배상, 항공료 환불 요구, 과도한 취소수수료 경감, 대안 항공편 제공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국내 제도는 승객들의 권리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지연을 일으킨 항공사에게 항공권과 운항시간 할당에서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공항 혼잡도 관리체계와 손해배상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연 판정 기준을 15분 초과로 엄격하게 적용하고는 있으나, 항공사에 대한 처벌이나 승객 보상에 관한 법적 토대가 부족해 실질적인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공항공사 차원에서도 다양한 개선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A-CDM 시스템 도입, 보안검색 구역 혼잡 해소, 인공지능 엑스레이 장비 확대, 터미널 시설 확장, 항공기 주기장 개선 등의 대책을 추진해왔지만, 실제 지연율은 여전히 2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배준영 의원은 "항공기 운항 지연은 단순한 출발 시간 지체를 넘어서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 직접적인 손실을 야기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반복적으로 지연을 발생시키는 항공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피해를 입은 승객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