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비핵화 목표 포기를 전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북한 핵무기 생산 중단에 관한 북미 합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정상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허황된 비핵화 집착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인 바탕에서 우리와 진정한 평화공존을 원한다면 미국과 마주앉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양호한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며 개인적 친분도 강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김 위원장이 직접 북미회담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연내 김정은과 만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어 양측의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다음달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이 확정된 상황에서 2019년 판문점 회동과 같은 돌발적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석에서 만남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응답하며 역사적 회동이 실현된 바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핵 포기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단언컨대 우리에게 '비핵화'란 결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며 "핵무력 보유가 이미 헌법에 기재된 만큼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위법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재 완화에 매달려 적대세력들과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식의 협상은 향후에도 영구히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더욱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한국과 마주앉을 일도 없고 어떤 것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히 통일은 불필요하다"고 못박았다.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며 "흡수통일 야욕에서는 이전 악질 보수정권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라고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공개된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핵 중단이 "잠정적 긴급조치로서 실현가능하고 현실적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연간 15∼20기 정도 핵무기를 추가 제조하고 있다"며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만으로도 명백한 이익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북중러 견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자신감을 얻은 상태에서 미국에 '비핵화 불가' 조건으로 판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북미대화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통해 남북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적 관계발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