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며 워싱턴이 핵 포기 요구를 중단한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마주앉을 일이 없다"며 단호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국무위원장은 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드러냈다고 22일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현 미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긍정적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비현실적인 핵 폐기 집착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여 진정한 평화 공존을 원한다면 우리 역시 워싱턴과 대면하지 못할 근거가 없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 예정인 상황에서 북미 간 예상치 못한 접촉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보유 포기는 절대 불가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무력 해제 후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는 전 세계가 이미 목격했다"면서 "우리는 결코 핵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제재 해제에 매달려 적대국과 무언가를 교환하는 식의 협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에도 영구히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핵무기의 1차 임무인 '전쟁 억제력'이 무력화될 경우 2차 임무가 작동될 것이라며 위협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국무위원장은 "억제력의 2차 임무가 작동되면 한국과 인근 지역 동맹국들의 군사 체계와 하부 시설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며 이는 완전한 파멸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적대적 양국가론'을 내세우며 어떠한 대화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그는 "정치와 국방을 해외 세력에 위탁한 국가와 통일을 추진할 의향이 전혀 없다"며 "대한민국은 모든 영역이 미국화된 불완전한 형태의 종속국이자 완전히 다른 성격의 외국"이라고 규정했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히 통일은 불필요하다"면서 "어느 한쪽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통일을 우리가 왜 추구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국무위원장은 "우리와 한국이 국경선으로 분리된 상이한 성격의 절대 합쳐질 수 없는 양개 국가임을 법률로 확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비판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이재명 정권이 이전 정부들과 차별화를 위해 '관계 개선'과 '평화'를 운운하며 '화해 노선'을 주창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중단-축소-비핵화' 3단계 접근법에 대해서도 "우리의 군사력 해체를 꿈꾸던 이전 지도자들의 과제를 그대로 따라한 모방작"이라고 폄하했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 하에서 국방예산이 8.2% 증액된 점을 언급하며 "반북 대결 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윤석열 정권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