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특검법 합의 파기' 사태로 재조명되는 강성 지지층 영향력

2025.09.14
민주당 특검법 합의 파기 사태로 재조명되는 강성 지지층 영향력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체결한 3대 특검법 개정안을 단 14시간 만에 철회한 사건을 통해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친명계 강성 지지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집단적 반발이 당 지도부의 정책 결정을 뒤바꾸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정청래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와의 협의를 거쳐 도출한 여야 합의안이 언론 보도 직후 온라인과 문자메시지를 통한 거센 항의에 직면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결국 김 원내대표는 협상 당사자임에도 사실상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었고, 정 대표에 대한 배신감까지 드러내며 "정청래한테 사과하라고 하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강성 지지층의 압박은 합의 번복 이후에도 계속되어 당 지도부 모두가 연쇄적으로 사과에 나서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정 대표는 "부덕의 소치"라며 고개를 숙였고, 김 원내대표 역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실상 항복 선언에 가까운 입장을 밝혔다. 법제사법위원장인 추미애 의원마저 사흘간 연속으로 자신은 합의 과정을 몰랐다는 해명을 반복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시에도 강성 지지층이 우원식 의원을 향해 "무슨 똥배짱으로 경선을 완주하느냐"며 사퇴 압박을 가했고, 예상과 달리 우 의원이 승리하자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며 당 지지율 하락까지 초래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은 국회직 선거에도 당심을 20% 반영하기로 결정하며 강성 지지층 달래기에 나섰던 바 있다.

올해 4월에는 우원식 의장의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이 지지층의 강력한 반대로 사흘 만에 철회되기도 했다. 전당대회에서도 이들의 입김이 절대적이어서 정봉주 후보가 최고위원 경선 1위를 달리다가 강성 당원들의 집중 비판으로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내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조직력과 규모에서 나온다고 분석한다. 일상적으로 문자공세 등을 펼치는 핵심 인원은 1-2만명 수준이지만, 실제 조직적 동원이 가능한 규모는 수십만에 달한다는 것이 의원들의 추산이다. 한 중진 의원은 "강성 지지층의 눈에 들면 유튜브 구독자가 급증하거나 후원금이 몰려든다"며 "현실 정치인으로서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민주당이 당원 주권 실현을 위해 각종 선거에서 당원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이들의 영향력 증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기 국회의장이나 원내대표 선거,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고려하는 의원들이 대여 공세 전면에 나서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국회의원은 개별적으로 헌법기관인데 요즘은 특정 사안에 대해 자기 견해를 표명하기조차 어렵다"며 "잘못 찍히면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여야 협치 공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중진 의원은 "정치는 상대방이 있는 것인데 여야 협력을 발휘할 여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당 지도자들이 때로는 당원들의 압박을 견뎌내고 직접 설득에 나서며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공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보이지 않는 대통령은 개딸"이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도 "민주당 정치인들은 개딸이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만을 골라 하며 그들에게 이쁨받는 데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강성 팬덤 정치가 정치 본연의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란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정치가 감성화되면 상대를 적으로만 보게 된다"며 "절대선과 절대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사회와 시스템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당원의 뜻을 반영한 상향식 의사결정이라는 순기능도 있지만, 공당이 일부 강경 지지자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