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의 대규모 방산 프로그램에 공식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명했다. 정부는 최근 EU 집행위원회에 총 1천500억 유로(약 245조원) 규모의 무기 공동조달 프로그램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에 대한 공식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외교부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체들의 유럽 시장 확장과 한-EU 간 군사협력 증진을 목표로 SAFE 프로그램 가입을 희망한다는 서면을 전달했다"고 명시했다. 이어 "의향서 접수는 공식적인 참가 희망을 알리는 첫 번째 단계"라며 "구체적인 참여 조건과 최종 가입 여부는 향후 논의 과정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AFE 제도는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의 무기체계 현대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계한 대출 프로그램으로, 공동조달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제공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내년 초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SAFE 자금으로 도입하는 장비에는 제3국 부품 포함률이 35% 이하로 제한되지만, 한국과 같이 EU와 안보·국방 파트너십을 맺었거나 가입 후보국 지위를 보유한 국가들은 별도 이자간 협약을 통해 이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토마 레니에 EU 집행위 대변인은 서면 답변을 통해 "안보·국방 파트너십 체결국들도 공동조달에 합류할 수 있으며, 참여 희망국들은 자국 방위산업의 진출을 위한 구체적이고 상호 유익한 협약을 논의하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협약 체결 과정은 상당히 엄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국 업체들 중에서도 유럽 지역 내 제조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로만 대상이 한정되며, 참여국의 재정적 기여를 비롯한 추가 조건들이 부과된다. 이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유럽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해당 프로그램의 핵심 목적에 따른 안전 조치다.
또한 제3국이 프로그램에 합류하려면 EU 및 유럽경제지역(EEA), 유럽자유무역연합체(EFTA) 소속국 또는 우크라이나 중 최소한 2개국과 함께 '공동조달 그룹'을 반드시 구성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고려할 때, 이미 우리나라와 대형 방산계약을 체결하고 SAFE 대출 신청을 마친 폴란드, 루마니아 등과의 협력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특히 폴란드는 집행위가 최근 공개한 자금 배분 계획에서 437억3천400만 유로(약 71조원)라는 최대 규모의 대출한도를 확보했다.
한국에 앞서 참여 희망을 표한 제3국으로는 영국과 캐나다가 있으며, 집행위는 곧 이들 국가와도 양자협약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EU 가입 후보국인 터키 역시 최근 의향서를 접수했으나, 그리스, 키프로스와의 외교적 갈등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참여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SAFE 프로그램 참여 추진은 K-방산의 글로벌 진출 확대와도 직결된다. 우리나라는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 지역에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의 대규모 수출 성과를 거두고 있어, EU 공동조달 시스템 진입 시 유럽 내 위상 강화와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