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사업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22조원 규모의 새만금 프로젝트 핵심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전국에서 추진 중인 신공항 건설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시민 1297명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토부가 조류충돌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환경영향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며 계획 수립 과정이 위법하다고 결론지었다.
판결의 핵심은 조류충돌 위험성에 있다. 미국·캐나다 신규 공항 입지 검토 모델에 따르면 새만금공항의 연간 예상 조류충돌 횟수는 최소 10.45회에서 최대 45.93회에 달한다. 이는 인천공항 2.99회, 김포공항 2.84회보다 월등히 높고, 특히 무안공항 0.07회와 비교하면 635배나 위험한 수치다.
치명적 기체 손실 사고 발생 예상 간격도 새만금은 19년에서 84년에 한 번꼴로, 인천공항 295년이나 무안공항 1만2221년보다 현저히 짧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직접 언급하며 "무안공항에서조차 조류충돌로 인한 대형 참사가 실제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항공운항 안전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새만금공항 부지 주변 환경도 문제가 됐다. 공항 예정지에서 7km 떨어진 곳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서천갯벌이 위치하고, 8km 거리에는 '새들의 낙원' 조성계획지가 있다. 개리, 큰기러기, 황새, 저어새 등 31종의 법정보호종 조류가 서식하는 환경에서 공항 건설은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국토부가 제시한 환경보호 대책의 실효성도 의문시됐다. 대체서식지로 제안한 환경생태용지가 사업부지에서 13km 이상 떨어져 있어 조류 이동을 보장할 수 없고, 법정보호종 포획·이주 방안은 야생생물보호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됐다.
경제성 부족도 사업 취소 사유에 포함됐다. 2018년 기준 비용편익비가 0.479에 불과해 투입 비용 6535억원 대비 편익이 3129억원에 그쳤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고 진행된 사업이지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공익이 항공안전과 환경보호를 상회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법원은 평가했다.
판결 이후 관련 당사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항소심과 집행정지 신청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해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도는 새만금공항을 운영 중인 기존 공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조류 퇴치 활동 등 안전대책을 통해 위험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항소 포기를 강력히 촉구하며 나섰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은 "조류충돌 대참사를 예고하는 새만금신공항 항소를 포기하라"며 갯벌 보존이 공항 건설보다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전국에서 추진 중인 다른 신공항 건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덕도신공항, 백령도공항, 흑산도공항 등도 비슷한 환경·안전성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가덕도신공항도 시민단체가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향후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두고 상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항공기 기장 출신 교수는 "드론 활용 조류 모니터링, 비상상황 매뉴얼 마련 등으로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 반면, 다른 항공 전문가는 "조류충돌 위험 해소 방안은 10년, 20년간 축적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만금공항은 2028년 완공,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1심 판결로 사실상 중단 상태에 놓였다. 국토부의 항소와 전북도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으로 최종 결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