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델 "한국 민주주의 양극화 완화 없이는 남북 평화공존 어려워"

2025.09.18
샌델 "한국 민주주의 양극화 완화 없이는 남북 평화공존 어려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18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 내부의 극심한 정치적 분열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처음 방한한 샌델 교수는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2025 국제한반도포럼 기조연설에서 "민주적 분극화를 완화하지 않고는 북한과의 공존도 진전될 수 없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샌델 교수는 공존의 개념을 세 단계로 구분해 설명했다. 첫째는 전쟁과 폭력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기본적 공존, 둘째는 서로 다른 체제와 가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상호존중적 공존, 셋째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상호 책임과 공유된 목표를 갖는 공동체적 공존이다. 그는 "현재 극심한 분극화를 고려할 때 한국이 최소한의 공존조차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이 해방 후 80년간 경제발전, 민주주의 정착, 문화적 성공이라는 세 가지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계엄선포 이후 수백만 명이 보여준 민주주의 수호 의지에 대해 "전 세계 민주주의 지지자들에게 감명을 주는 '빛의 혁명'"이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세 성과 중 가장 불안정하지만 가장 지켜야 할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샌델 교수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민주주의가 여전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 아닌 현상"이라고 규정하면서, 특히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수백 명이 범죄자로 취급받아 구금된 사건을 "가장 심각하고 우려스러운 사례"라고 비판했다.

분극화의 원인으로는 이념적 대립, 경제적 불평등, 과도한 교육 경쟁을 지목했다. 샌델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로 창출된 부가 상위 20%에 집중되면서 중산층 소득은 정체되고 하위층은 전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며 "그런데도 가난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는 능력주의가 만연해 저학력자와 노동자들의 분노가 누적됐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정당 간 이념적 양극화가 있고, 미국·일본·북한에 대한 이념적 차이들이 존재한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가운데 승리자와 패배자의 괴리감이 교육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시절을 '생사를 가르는 전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라며 교육 경쟁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해결책으로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을 제시했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사람을 나누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성공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재고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학력에 관계없이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서로 다른 계층을 연결하는 사회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이 추구할 공존은 양극화를 해결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며 "국가 간뿐 아니라 국가 내에서도 그런 공존이 이뤄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