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동결 조치에 대해 "잠정적 응급처치로서 실행 가능하며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표명했다. 동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같은 날 관영 매체를 통해 비핵화 협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이 완강한 거부 입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첫 단계 동결과 제재 완화 교환이 이루어진 후 협상이 멈춰버릴 경우, 북한의 핵 소유를 지속시키고 완전한 비핵화 달성은 실패하는 '위험한 교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BBC 인터뷰에서 "(북한에는) 지금도 매년 15~20기 가량의 핵무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완벽한 최종 목적(비핵화)을 위해 성과 없는 노력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목적을 설정하여 일부분이라도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에 합의하고 미래 비핵화 약속은 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단 일종의 잠정적 응급처치로서 핵 개발, 미사일 개발 등을 현재 상태에서 중단하는 것 자체도 군사 안보적 평화 측면에서 유익한 부분이 분명 있다"며 동의 의사를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미국 타임지와의 대화에서 '3단계(중단-축소-비핵화) 비핵화 접근법'을 설명하며 북한의 핵 용인과 완전 비핵화 달성을 "모 아니면 도의 선택(all or nothing)"이라고 규정하고 "중간 지점"을 찾겠다고 표명했다.
김정은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회의 연설에서 "현 집권자의 '3단계 비핵화론' 역시 우리의 무장 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발언했다고 노동신문 등이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재명 정부'를 실명으로 언급하며 "(단계적 비핵화 제시로)우리와 마주앉을 수 있는 명분과 기초를 제손으로 허물어버렸다"고 비난했다.
또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의 전통적·궁극적 목표로, 북한이 이를 선호하든 반대하든 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 것도 언급하며 "(이는) 우리의 체제, 우리의 헌법을 전면 부정하는 망발"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3단계 비핵화 접근법을 김정은이 정면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은 하지 않겠다며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한국이 작은 성과라도 보겠다며 협상 시작에만 중점을 둔다면 이는 김정은이 의도하는 '북핵 용인'이라는 결과로 수렴할 위험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대통령의 중간 지대 구상이 '동결-제재 완화-비핵화 협상 중단-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 승인'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북한이 핵 활동 중단만 해도 제재 완화나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럴 경우 북한이 핵 개발을 재개해도 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북한의 뒷배를 자처하는 마당에 안보리 차원에서 다시 대북 제재를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비핵화 초기 단계인 동결 조치는 그 자체로 북핵 용인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며 "정부의 선의와 달리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면 한국으로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 대통령의 '북핵 동결 수용' 발언이 기존 대한민국 입장과 달리 북한 비핵화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닌지 우려가 크다"며 "대북송금 사건으로 북한 김정은에 단단히 약점 잡혔을 가능성이 있는 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