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한 배액배상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언론 현업단체들이 당 지도부를 만나 예정된 법안 처리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4개 단체는 25일로 설정된 본회의 처리 목표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일정 조정을 요구했다.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노종면 의원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예정된 날짜로 확정해놓은 부분이 사회적 논의 진행에 부담이 된다며 일정을 뒤로 미뤄달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언론단체들은 또 배액배상 논의와 함께 명예훼손죄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정성 심의 문제도 종합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당초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고의나 과실로 인한 허위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중재법을 건드리지 말자"며 유튜브 등 온라인 매체의 허위정보 유포 문제를 우선 지적하자, 정보통신망법 중심으로 논의 방향이 전환됐다.
이에 따라 당은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조작정보 유포에 대한 배액배상 적용 요건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노 의원은 "사실에 관한 보도여야 하고, 허위임을 인지했어야 하며, 악의적 의도가 있어야 하고, 실제 피해가 발생해야 한다"며 구성요건을 설명했다. 기존 논의에서 포함됐던 '중과실' 개념은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적용 대상 역시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뿐 아니라 언론사의 유튜브 채널까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은 "정보통신망상 주체들이 매우 다양한데, 개인이 제작한 유튜브 채널도 특정 기준을 충족할 때 적용되며, 언론사 유튜브 채널도 해당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보통신망법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은 인터넷상 모든 표현물을 규제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론보도는 물론 커뮤니티 게시글, 포털 댓글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국들의 사례를 보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질적 악의'가 명확한 증거로 입증될 때만 인정하며, 영국은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 판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호주는 2005년 명예훼손법에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언론단체들은 간담회에서 현행 명예훼손죄 제도의 개선도 함께 논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사실 적시로도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현행법의 문제점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된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노 의원은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제를 논의할 때 명예훼손 관련 조항도 함께 검토하면 좋겠다는 게 언론단체들의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언론단체들의 일정 연기 요구에 대해 특위 차원에서 논의를 거쳐 입장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당은 25일 본회의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등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위해 일정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