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라면이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시작으로 한국은 작년 1조 7천억 원 규모의 라면을 수출하며 일본을 넘어서 글로벌 1위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미 1조 원을 돌파하며 K-푸드의 위력을 입증하고 있다.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 라면은 한 봉지에 10원이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20~25원, 담배 한 갑이 25원이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타이완 출신으로 일본에 정착한 안도 모모후쿠였다. 그는 사업 실패와 수감 생활을 겪으며 몰락한 후, 전후 일본의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을 목격하고 중국식 면을 즉석에서 조리할 수 있도록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1958년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슬로건으로 치킨라면을 출시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는 1961년 전중윤 당시 제일생명 사장이 일본 출장에서 라면을 맛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처음에는 라면 기술 도입 과정에서 여러 차례 거절당했지만, 끝내 묘조식품의 오쿠이 키요즈미 사장을 설득해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초기에는 일본식 닭고기 맛 스프였으나 이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쇠고기 맛으로 변경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권장 정책은 라면 보급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다. 1970년대 들어 국민적 간식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야간 근무자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며 급속한 경제 성장의 뒷받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삼양식품은 1989년 11월 공업용 우지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팜유보다 비싼 소기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극적 보도와 시민사회의 과도한 반응, 당국의 무리한 수사가 맞물리면서 회사는 악역으로 몰렸다. 경영진 구속, 제품 100만 박스 폐기처분, 직원 1천 명 퇴사라는 참사를 겪었다. 6년 후인 199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이미 시장 지배력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추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누적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 처리되어 7년간 회생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전 회장의 첫째 며느리인 김정수 전 삼양라운드스퀘어 대표가 회사에 합류하여 불닭볶음면 돌풍을 일으키며 극적인 반전을 이끌었고, 작년에는 영업이익 부문에서 농심을 앞지르며 왕좌 탈환에 성공했다.
식량 부족 시대에 국민 영양 공급원으로 탄생한 라면이 영양 과다 시대인 현재에는 건강의 주요 위협 요소로 지목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인은 평균 5일마다 한 번씩 라면을 섭취하여 연간 70여 개를 소비한다고 한다. 라면에는 탄수화물 50~80g, 단백질 8~12g, 지방 12~16g, 나트륨 1200~1800mg, 포화지방산 4.5~8g이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나트륨 함량이 문제가 된다. 나트륨은 고혈압, 심혈관질환, 뇌졸중, 신장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지는데, 라면 한 개에 WHO 일일 권장량 2000g의 80%에 해당하는 양이 들어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면을 발명한 안도 회장은 96세까지, K-라면의 아버지인 전 회장은 95세까지 장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라면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명확한 기능이 있고, 라면이 주는 만족감은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적정량을 적절한 빈도로 섭취한다면 라면도 독이 아닌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면을 좀 더 건강하게 즐기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자주 먹는다고 생각되면 횟수를 줄이고 특히 야간 섭취는 피하는 것이 좋다. 면만 따로 삶아 물을 버리고 다시 끓이면 면발의 지방과 나트륨을 제거할 수 있고, 냉수로 헹군 후 재조리하면 더욱 쫄깃한 식감도 얻을 수 있다. 스프는 전량 사용하지 말고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만 넣는다.
달걀, 두부, 파, 양파, 버섯, 당근 등을 추가해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하고, 식후에는 우유를 마시면 단백질과 칼슘을 보충하면서 칼륨이 나트륨 배출을 도와준다. 외식할 때는 국물보다는 면 위주로 먹고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소 칼륨이 풍부한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와 바나나, 토마토, 사과, 감자, 고구마, 시금치, 버섯, 콩류를 많이 섭취하면 나트륨 배출에 도움이 된다. 라면을 먹은 날에는 다른 짠 음식은 줄이고 수분을 많이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면 제품을 선택하거나 조리 시 냄비 두 개를 활용해 면을 먼저 삶고 따로 국물을 끓이는 방법을 사용하면 나트륨을 최대 27%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라면의 단골 반찬인 김치는 100g당 650mg의 나트륨이 들어있어 함께 먹으면 일일 권장량을 초과하게 되므로 양을 조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