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서 자주 겪는 '깜빡' 현상의 과학적 원인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한국뇌연구원 라종철 감각·운동시스템 연구그룹 책임연구원팀이 단기기억 실수가 발생하는 뇌 속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해명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연구진은 단기기억 장애가 정보 입력 단계의 문제인지, 아니면 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서 연구를 출발시켰다. 실험 생쥐를 대상으로 시각 데이터를 일시적으로 저장한 후 정확한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지연일치 행동실험'을 고안했다.
살아있는 실험체의 뇌 활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이광자 칼슘 영상기법'을 도입하여 감각정보 통합과 기억 보존을 담당하는 후두정피질 영역의 신경세포 반응을 면밀히 관찰했다.
실험을 통해 흥미로운 현상이 포착되었다. 기억 보존 기간 동안 신경세포들의 신호가 올바른 답에서 점차 벗어나 잘못된 선택지 방향으로 이동하는 '신호 변동' 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신경활동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실험 동물들은 결국 부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는 초기 정보 입력이 정확하더라도 유지 단계에서 뇌 신호가 불규칙하게 요동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결과다. 연구팀은 여러 신경집단 분석 방법론을 활용하여 이 변동 현상과 행동 착오 사이의 직접적 상관관계를 확실히 입증했다.
라종철 책임연구원은 "일상적으로 던지는 '왜 계속 잊어버릴까' 하는 질문에 대해 입력 오류뿐만 아니라 기억 저장 중에도 뇌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는 명확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기억 원리 해명을 넘어서는 확장성을 갖는다. 조현병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처럼 단기기억 손상이 핵심 증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신경질환들의 발생 원리 이해와 조기 진단 기술 개발에 중요한 토대가 될 전망이다.
라 박사는 "뇌-컴퓨터 연결장치와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도 신경신호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연구의 미래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최신호에 게재되었으며, 한국뇌연구원 최준호 선임연구원과 배성원 연수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는 한국뇌연구원 자체사업과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