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정부의 신용사면을 통해 채무 기록이 삭제된 차주 가운데 3분의 1이 재차 대출 연체 상황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취약층 경제적 재기를 위한 선의의 정책이 되레 채무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성실 차주들의 금리 부담만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주요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입수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신용복권 혜택을 받은 286만7천여 명 가운데 95만5천여 명(33.3%)이 올해 7월 기준 새로운 미상환 기록을 남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정책 도입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이 사면 조치 이후 금융권에서 조달한 자금 규모다. 해당 집단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까지 차입한 총액은 38조3천억원에 달하며, 이 중 28조5천억원이 여전히 미납 상태로 남아있다. 개별 차주당 평균 체납액만 4천283만원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과거 접근하기 어려웠던 주요 금융권으로 몰렸다는 사실이다. 신규 차입의 88%가량이 은행권과 제2금융권을 통해 이뤄졌으며, 특히 39만6천여 명이 은행에서만 16조6천억원을 대출받았다. 또한 79만8천여 명은 저축은행·보험·카드사 등에서 17조원대 자금을 조달했다.
신용등급 상승효과도 일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면 직후 개인 신용점수는 평균 31점(653→684점), 개인사업자는 101점(624→725점) 급등했지만, 최근에는 671점 수준으로 하락해 상승분을 모두 되돌려줬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 정부는 올 하반기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 신용사면을 예고했다. 채무 상한선을 기존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대폭 확대해 324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다. 여기에 신설 예정인 배드뱅크를 통한 113만명 지원까지 합치면 총 437만명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금융업계에서는 반복되는 연체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전체적인 대출금리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면 대상자와 일반 고객을 구별할 수 없어 위험도를 반영한 금리 조정이 전면적으로 적용됐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별 신용사면 규모를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106만명, 이명박 정부 49만명, 박근혜 정부 58만명에서 시작해 코로나19 이후 문재인 정부 228만명, 윤석열 정부 286만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복지 수급자의 경제적 자립률 또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자활 성공률이 2021년 26.3%에서 지난해 18.7%로 크게 떨어졌다. 복지부 측은 "참여자 연령대 상승과 고용시장 여건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양수 의원은 "무차별적인 채무 면제는 성실 상환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증대시키고 도덕적 해이 현상을 조장할 위험이 크다"며 "인기영합주의적 접근보다는 진정한 재기 의지를 지닌 대상자를 엄선해 지원하는 체계적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