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사법부 내부에서는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법원은 민주당 지도부의 직접적인 퇴진 요구에도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사법 독립을 저해하고 내란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주체"라고 지목하며 공개 사퇴를 촉구했다. 정청래 당 대표 또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설명할 수 없는 의혹에 대해 대법원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과와 사퇴를 강력히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추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특별한 견해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시대적·국민적 요청이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청의 개연성과 근거에 대해 성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원론적으로 동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등원길에서 '사법개혁' 법안 추진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으나, 이날은 출입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대법원 역시 공식 견해 발표를 포함해 어떤 언급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사법부 내부에서는 최고 수장을 향한 노골적인 퇴진 압박에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노골적인 삼권분립 침해"라며 "법사위원장 발언에 대통령실이 호응하고 당 대표까지 가세한 상황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더욱 강한 요구들이 제기되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결국 지귀연 부장판사뿐만 아니라 대법원장까지 공공연히 물러나라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압박해서 사퇴한다면 매우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987년 개헌 이후 대법원장 8명 중 중도 퇴임한 경우는 2명에 불과했는데, 모두 사법부 내부에서 분출된 '사법파동' 결과였다. 김용철 9대 대법원장은 1988년 전국 판사들의 사퇴 요구로 인한 '2차 사법파동'으로, 김덕주 11대 대법원장은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으로 각각 물러났다. 하지만 정치권의 외부 압력에 의해 사퇴한 전례는 없었다.
법원 관계자는 "독재 정권 시기에도 대법원장 사퇴를 공공연하게 언급한 적은 없었다"며 "정치인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과 대통령실이 이에 호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지법의 한 고위 법관은 "민주당에서 법원을 향해 '자업자득'이라고 한 것을 보면 결국 입법자의 의도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며 "형식적으로 합헌적인 국회 권한행사 외관을 띠더라도 그 동기가 불법적이어서 위헌적이고, 입법자의 재량권에 사적인 동기가 개입돼 있어서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이날 성명을 통해 "대법원장의 퇴진,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해 편향된 결론, 예정된 결론에 도달하도록 사법부를 강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헌법 어디에도 권력의 서열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권력분립 원리에 반해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진퇴를 거론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