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2주간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한 아동 대상 유괴 시도 사건으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서울, 인천, 광명, 제주 등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전국 초등학교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으며 학부모들로 하여금 자체적인 안전망 구축에 나서게 했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1학년 자녀 학부모 김모씨(39)는 "확실히 걱정이 커졌다. 양가 부모님까지 동원해서라도 아이 등하교를 직접 챙겨야겠다"며 "학부모들 간에 서로 아이들을 함께 데려가거나, 등하교 도우미를 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 2학년 손녀를 데리러 온 이모씨(68)도 "아이 부모가 맞벌이라 내가 직접 나왔다"며 "유괴라는 끔찍한 사건 소식이 계속 들려와 너무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하교 시간인 오후 1시경 이 학교 교문에서는 각 반 담임교사들이 아이들을 직접 데려와 학부모와 학원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인계'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은 여러 명씩 그룹을 지어 함께 귀가했다. 이 학교 인근에서는 지난달 28일 유괴 시도 사건이 실제로 발생해 학부모들의 경계심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인근 다른 초등학교는 지난 1일 가정통신문을 통해 "관내 초등학교 주변에서 학생 유괴 시도 사례가 발생했다"며 "자녀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도록 평소 지도해주시고 유사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당부한다"고 안내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미성년자를 겨냥한 약취·유인 범죄는 2020년 158건에서 작년 316건으로 4년 사이 2배 증가했다. 이에 경찰은 다음 달 2일까지 전국 6183개 초등학교와 통학로에 5만여 명의 인력을 집중 배치해 순찰 활동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별도로 5주간 등하교길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역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큰 사건을 저지르기 전 연습 같아서 더 무섭다", "아이들이 매일 다니는 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적이다", "동네에서 수상한 행동만 주시해도 억제 효과가 있을 것", "부모와 아이들의 우려를 덜어줄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인천에서는 초등학교 앞에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5학년 여학생을 유인하려 한 40대 남성이 체포됐다. 그는 "귀여워서 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진술했지만 구속 조치됐다. 광명시에서는 10대 고교생이 초등 저학년 여학생을 따라가 입을 막고 목을 조르며 끌고 가려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성범죄 목적의 범행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제주 서귀포에서는 30대 남성이 "알바할래?"라며 여학생을 차에 태우려다 검거됐다. 이들 범행은 주로 하교 시간을 노려 발생했으며, 가해자 연령대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수법은 "맛있는 것 사주겠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 등 단순한 대화와 접촉에서 시작됐다.
각 지자체들도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초등학생 전 학년에 '초등안심벨'을 보급할 예정이다. 위급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100데시벨 이상의 경고음이 울리는 장치로, 올해 1~2학년 11만3000개를 보급했던 것을 내년에는 24만7000개를 추가해 전체 학년(36만 명)으로 확대한다. '안심헬프미' 10만 개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범죄 확산 현상을 '카피캣(copycat) 효과'로 분석한다. 언론과 SNS 노출이 잠재적 가해자에게 자극이 되고, 사회적 불안과 고립감, 분노가 겹치면서 범죄가 '사회적 언어'처럼 번진다는 것이다. 특히 아동 대상 범죄는 부모와 지역사회의 불안을 단시간에 극대화하며 그 불안이 다시 사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부모들의 민감성이 높아져 묻힐 뻔했던 사건들도 보도로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성범죄 목적, 경제적 목적, 존재감 욕구 등이 결합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물리적 순찰과 장비 보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교-가정-지역이 연계되는 상시 네트워크 제도화와 언론의 수법 노출 최소화, 온라인 범행 예고 조기 차단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가 유행처럼 퍼지는 이유는 인간이 동질감과 자아 정체감을 느끼려는 심리와 연관 있다"며 "이미 동기를 가진 사람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인지하는 순간 참여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제적 동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자살 보도처럼 범죄 보도에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언론이 선정적 요소를 부각할수록 내재적 동기를 가진 이들에게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