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중 일주일간 억류당한 한국인 작업자들에게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14일 공개된 한 작업자 B씨의 억류 기록에는 당시의 참담했던 수용시설 실태와 인권유린 사례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B씨는 정당한 B1 비자를 통해 미국에 들어와 두 달 동안 업무 회의와 교육 목적으로 출장 중이었으나, 플라스틱 결속선에 손목이 결박당한 상태로 연행되었다. 미국 이민단속청(ICE)은 지난 4일 오전 10시경 작업장을 기습했다. 당국자들은 안전장비를 착용한 작업자들에게 1차 신체검사를 실시했으며, B씨는 신분증이나 여권조차 챙길 여유가 없었다.
오후 1시 20분경 ICE 직원들은 외국인 연행 영장 관련 문서를 배포하며 공란을 기입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문서에 대한 안내나 미란다 권리 통지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위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영문 내용을 한 줄씩 해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한다. B씨는 "작업자들이 이 문서를 작성하면 석방될 것으로 생각하고 제출했다"며 문서 제출 후 손목에 붉은 표식이 채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요원들은 문서를 제출한 작업자들의 소지품을 압수하기 시작했다. 망사 형태의 가방에 휴대폰 등의 물건을 넣도록 강제했다. 심각한 상황을 감지한 B씨는 짐 사이에 있던 휴대폰을 몰래 작동시켜 가족과 회사에 '연락이 어려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송한 후 다시 껐다.
B씨는 9시간 이상 대기한 후 손목에 플라스틱 결속선이 단단히 채워진 채 호송 차량에 승차했다. 먼저 이송된 사람들은 허리와 다리, 손목까지 쇠고리로 속박된 상태였다. 호송 차량 내부에는 변기가 설치되어 악취가 가득했고 냉방장치도 가동되지 않았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온 작업자들은 초기에 72인용 임시 수용소에 집단 수용되었다. 1번부터 5번까지의 방이 있었고 억류자들은 방을 이동하며 생활했다. 나란히 배치된 2단 침대와 공용 화장실 4개, 소변기 2개가 전부였다. 시계도 없고 외부도 볼 수 없는 구조였으며, 침대 매트리스에는 곰팡이가 번져있었다.
발 디딜 공간조차 부족한 환경에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화장실 옆에는 하반신만 겨우 가릴 수 있는 천 조각만이 놓여있었다고 한다. B씨는 생리적 욕구를 억지로 참아가며 견뎌냈다.
B씨는 "생활용품이나 수건 지급도 받지 못한 채 잠들었다"며 "동료가 수건 하나를 줘서 그것으로 몸을 덮고 잠들었다"고 기록했다. 임시 공간이 극도로 추워 작업자들은 수건을 몸에 감고 있었으며, 일부는 전자레인지에 수건을 넣어 따뜻하게 한 후 몸을 덥혔다. 제공된 물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나중에 치약과 칫솔, 담요, 데오도란트 등이 제공되었다. B씨는 4일째가 되어서야 입소 절차를 마치고 2인 1실을 배정받았다. 억류자 규모가 워낙 커서 관련 절차가 지연된 경우에는 72인실에만 머물러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필기구와 종이는 제공되지 않았다. B씨는 4일째 서류 작성 중에 몰래 종이와 펜을 확보하여 억류 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버텨내던 3일째인 6일, 마침내 ICE 면담이 개시되었다. 먼저 ICE 요원들은 '자진 출국 서류'를 배포한 후 서명을 요구했다. 다수의 억류자들은 '불법'이라는 표현으로 가득한 서류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일단 서명했다.
오랜 대기 끝에 B씨는 3일 만에 처음으로 외부 공기를 맡으며 면담 장소로 이동했다. 양손 지문을 채취한 후 ICE 요원 2명이 B씨의 서류를 검토했다.
첫 번째 질문은 '어떤 업무를 했는가'였다. B씨는 업무 회의와 교육을 위한 출장이었다고 대답했다. 이후 별다른 질문 없이 요원이 '남한(South Korea) 출신인가'를 물었고 B씨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직원들은 웃음을 띠며 서로 대화하면서 '북한(North Korea)', '로켓맨'(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붙인 호칭) 등을 거론했다.
B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를 가지고 농담과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분노했지만, 혹시 서류에서 문제가 생길까 우려되어 참았다"고 일지에 남겼다.
면담 마지막에 B씨는 "나는 적법한 B-1 절차로 입국했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했는데 왜 연행된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나도 잘 모르겠고 상부에서는 불법이라고 판단한다"는 요원의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일부 요원들은 다른 억류자들에게 ICE의 오류를 시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4일째인 7일, 총영사관과 외교부 직원 4명이 억류자들을 면담했다. 총영사관 측은 "모두 집에 먼저 돌아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여기서 서명을 요구하는 것에는 무조건 서명하라"고 말했다고 B씨는 전했다.
또한 분쟁이 발생하면 최소 4개월에서 수년간 구금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아울러 서명하면 강제추방당해 비자가 취소되고 전세기로 고국에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안내했다고 한다.
B씨는 그날 밤 11시경 4일 만에 정식 입소 절차를 거쳤다. 죄수복으로 처음 의복을 교체하고 키와 몸무게, 혈압 등 의료검진을 받았다.
새벽 3시경 B씨는 2인 1실을 배정받았다. 해당 건물에는 50개의 방이 있었고 각 방마다 화장실과 책상, 2층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5일째인 8일에도 외교부 직원들이 억류자들을 만났다. B씨는 "B-1 비자로 입국한 것이 왜 불법인지 파악이 안 된 것 같아 화가 났다"며 "자진 출국 서류에 서명한 후 우리를 무조건 내보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져 어이없고 분노스러웠다"고 적었다.
그 후로는 특별한 정보 없이 대기만 계속되었다. 언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예정보다 석방이 미뤄지면서 억류자들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결국 작업자들은 11일 새벽 1시경부터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지옥과 같았던 구금시설을 떠날 수 있었다. 작업자 330명(한국인 316명, 외국인 14명)은 대한항공 전세기 KE9036편을 이용해 한국시간으로 오후 3시 30분경 조국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