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초과 상태 담보대출도 정상거래라면 사해행위 취소 불가…대법원 판단기준 제시

2025.09.14
채무초과 상태 담보대출도 정상거래라면 사해행위 취소 불가…대법원 판단기준 제시

채무보다 재산이 적은 상황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용한 경우에도 정상적인 거래관계였다면 사해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14일 나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선의 수익자' 인정 여부를 가리는 구체적 기준을 명시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전처 A씨가 전 남편의 채권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환송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4년 이혼 과정에서 재산분할 명목으로 전 남편 C씨로부터 약 4억4000만원의 채권을 확보했으나, 일부 변제 이후에도 3억2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이 미회수 상태였다. C씨는 2015년 파주 소재 토지를 구입해 단독주택을 건축했고, 2022년 8월 B씨로부터 2억원을 차용하며 최고채권액 2억4000만원 규모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해당 부동산에는 이미 4억원 상당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된 상태였으나, C씨는 전세금 반환 목적으로 B씨와 대출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차용금 중 1억5000만원은 즉시 전세금 변제에 활용됐고 전세권도 말소됐다. 이후 경매 진행으로 B씨는 약 1억5000만원을 배당받았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주며 근저당권 설정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부동산에 다수의 근저당권이 단기간 설정되었다가 말소된 기록 등을 근거로 B씨가 C씨의 채무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견해는 달랐다. 대법원은 "사해행위취소소송에서 수익자의 선의 입증 책임은 수익자에게 있으며, 선의 여부 판단은 채무자와의 관계, 거래 경위와 내용, 대가 지급 여부, 담보가치 등 객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거래조건이 다소 이례적이라는 사유나 수익자가 채무자의 재산 현황을 적극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선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선의 수익자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수익자와 채무자가 친족관계 등 채무자의 재산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특수관계에 있지 않을 것 ▲거래관계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지 않고 상당한 대가를 실제 지급하는 등 정상적 거래에 해당할 것 ▲수익자의 기존 채권에 대해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적 만족을 얻기 위한 담보 제공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을 것 등이다.

이번 사안에서 대법원은 "B씨는 C씨와 친족관계가 아니며 채무자의 재산 현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별한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거래는 정상적이었고 B씨는 담보가치를 신뢰하여 자금을 대여했으므로 선의 수익자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부동산의 객관적 담보가치는 약 6억5000만원으로 평가되어 B씨의 대여금액에 상응하는 담보가치가 존재했던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수익자가 이러한 요건들을 입증하면 사해행위로 인한 공동담보 부족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익자의 선의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