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현지시간) 폐막한 'IAA 모빌리티 2025'는 유럽과 중국 간의 격돌 무대였다.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이번 대규모 국제 모빌리티 박람회에서 글로벌 판매 2위 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은 본토 위상에 걸맞은 최대 규모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중국 측도 2023년 대비 40% 증가한 100여개 기업이 참여해 글로벌 완성차 제조업체로의 비약을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메세 뮌헨 컨벤션센터 내부에서는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 BYD가, 뮌헨 시내 야외 전시구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과 도심항공교통(UAM) 택시 모형까지 동원한 샤오펑이 독일의 터줏대감 폭스바겐 전시관 바로 맞은편에서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현재 유럽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위기 국면이다.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풀어진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켜 제조 비용 부담을 키웠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파급효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는 크게 위축된 상황이며, 폭스바겐그룹이 경영난 해결을 위해 독일 내 3개 공장 폐쇄를 고려할 만큼 상황이 악화됐다.
정책적 일관성 부족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35년 내연기관 생산 완전 중단이라는 목표가 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전기차 수요 부진이 계속되면서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대 완성차 업체는 탄소배출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성능 대비 가격으로 무장한 중국 브랜드들이 거센 기세로 유럽 대륙을 공략하고 있다. IAA 모빌리티 2025 개막일 프레스데이에서 중국 브랜드들은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대규모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BYD는 메세 뮌헨 전시장에 특별 무대를 설치하고 리허설까지 거쳐가며 신차 발표에 심혈을 기울였다. 스텔라 리 BYD 부사장은 "무제한 속도의 독일 아우토반처럼 거침없이 유럽 시장을 향해 질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U가 위기감을 느끼고 중국산 전기차 수입 관세를 기존 10%에서 30~40%로 대폭 인상했지만, 정부 지원에 힘입은 가격 우위와 격렬한 내부 경쟁을 통해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의 유럽 내 입지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자토 다이내믹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신차 등록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작년 동기 대비 무려 91% 급증한 34만7천135대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샤오펑 전시 공간에서 만난 독일인 가족은 고급 전기 MPV X9의 센터 스크린을 이곳저곳 만져보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기차 시장은 유럽 자동차 업계의 전반적 침체에도 불구하고 회복세를 나타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통계를 보면 올해 1~7월 EU 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101만1천903대로, 작년 같은 시기(81만5천399대)보다 약 24.1% 상승했다.
이에 유럽 완성차 업계는 대규모 전동화 투자를 통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엔진 기술의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유럽 명품 브랜드들이지만 전동화 속도 측면에서는 중국이나 테슬라에 뒤처진 것이 현실이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이번 IAA 모빌리티에서 3천만~4천만원대 가성비 전기차 신모델들을 대거 투입하며 중국의 '공세'에 맞서는 배수진을 쳤다.
주행거리 기술 경쟁 역시 이번 행사의 핵심 관전 포인트였다. BYD는 5분 충전으로 400km 이상 주행 가능한 고속충전 기술을 발표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24시간 동안 5천479km를 달려 전기차 장거리 주행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고성능 AMG 전기 콘셉트카 '콘셉트 AMG GT XX'를 선보였다.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는 1회 충전으로 듀얼모터 모델 670km, 퍼포먼스 모델 565km 주행이 가능한 '폴스타5'를 공개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게도 유럽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전략적 거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지연으로 미국이 여전히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2015년 발효된 한-유럽 FTA에 따라 관세 없이 진출할 수 있는 유럽 시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이번 행사에서 첫날 프레스데이를 생략하고 야외 전시장으로 직접 향해 일반 고객들과의 소통에 집중했다. 현대차는 유럽 시장 겨냥 해치백 형태의 소형 전기 콘셉트카 '콘셉트 쓰리'를 세계 최초로 공개해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이오닉3 명칭으로 양산될 가능성이 높은 이 모델은 내년 유럽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아 또한 화려한 야외 전시공간을 조성해 유럽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EV3, EV5, EV6, EV9와 함께 내년 출시 예정인 소형 전기 SUV EV2의 콘셉트 모델을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