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이란의 거장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창작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드러냈다.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유일한 현존 감독인 파나히는 "어떤 권력도 영화인의 창작 열망을 저지할 수 없다"며 자신만의 철학을 피력했다.
이란 사회의 억압적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해온 파나히 감독은 수차례 구속과 가택구금, 출입국 제한, 20년간의 영화 제작 금지 조치를 당했음에도 불굴의 의지로 작품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는 "정부로부터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았을 당시 홀로 집에서 카메라를 향해 연기하며 촬영했다"고 회상하며 "혼자서라도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강한 결의가 늘 마음속에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했던 파나히 감독은 택시 운전 중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승객들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택시'(2015)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제작이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택시 운전을 떠올렸고, 차량 내부에 카메라를 은밀히 설치해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창작자는 항상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발견해내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저 사고였을 뿐'이 프랑스 대표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부문에 출품된다는 소식에 대해 파나히 감독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아카데미 출품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했다"며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란 정부 규정 때문에 자국이 아닌 공동제작국인 프랑스를 통해 출품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과거 2006년 작품 '오프사이드'도 비슷한 이유로 아카데미 출품을 포기해야 했다며, "나와 같은 독립 영화제작자들이 힘을 합쳐 이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이란의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부 검열을 받아야 하며, 이를 거부하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파나히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연은 각별하다. 특히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와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는 "김 프로그래머가 생전에 이란 영화에 큰 애정을 보여주었다"며 "출국금지로 어려운 시기에도 이란까지 찾아와 격려해준 분"이라고 회고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 프로그래머의 묘소를 참배한 파나히 감독은 "2017년 칸영화제 참석 전 우리 집을 방문해 한국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지만, 그곳에서 영원히 떠나게 되어 이번 기회에 직접 찾아뵙고 싶었다"고 전했다.
내달 2일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그저 사고였을 뿐'에 대해 파나히 감독은 "관객들에게 시간의 허비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배급업체들이 더 많은 관객들이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젊은 영화인들에게는 "현재 세대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혁신적 기술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기술 발전 시대에 영화 제작을 하지 않을 핑계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진정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