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량 구금 사태의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업계 전반의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배터리 제조는 시기가 핵심 요소인 만큼, 생산 일정 지연이 계속될 경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른 지원 혜택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체류 중인 단기 상용 비자 보유 직원들에 대한 업무 중단 지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구금 경험을 겪은 임직원들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지난 12일부터 다음 달 추석 연휴까지 유급휴가를 받고 있는 상태다. 회사 차원에서는 비자 문제 해결 시까지 필수적인 고객 미팅을 제외하고는 미국 출장을 최대한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 건설 중단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이 조지아주 합작 공장에 대해 "최소 2~3개월간의 공사 지연이 피할 수 없다"고 언급했지만, 증권가에서는 1년 이상 연기될 수 있다는 더욱 부정적인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원래 계획으로는 해당 시설이 올해 말 완공되어 내년 초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유안타증권 이안나 연구원은 "설비 구축과 시운전 단계에서 핵심 전문가들의 이탈로 내년 양산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라며 "외교적 해결책이 없는 한 공백을 채울 대안이 부족해 1년 이상의 양산 연기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내년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 하락과 지원금 축소, 금융비용 및 고정비 부담 증가 등의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IRA 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는 2032년에 종료될 예정이어서, 배터리 양산 지연은 곧 혜택 기간 단축을 의미한다. 전기차 시장의 일시적 수요 침체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이 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에게는 더욱 큰 충격이 될 전망이다.
지난 2분기 LG에너지솔루션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규모는 4,908억원에 달했으며, 이를 제외한 영업이익은 단 14억원에 그쳤다. 증권가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공장들이 차례로 완성되면서 관련 혜택이 올해 1조7,000억원대에서 내년 2조6,000억원대로 증가하고, 조지아주 공장 생산분으로도 수천억원의 추가 혜택을 얻을 것으로 예측해왔다. 하지만 이런 전망 역시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LS증권 정경희 연구원은 "조지아주 공장 공사 차질로 내년부터 계획된 현대차향 미국 판매 물량이 감소할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의 내년 수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혜택 외에도 조지아주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고객 기반을 다변화한다는 전략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판매 물량은 제너럴모터스에 60% 이상 집중되어 있어, 조지아주에서 현대차와의 합작 공장 운영을 통해 현대차향 미국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었다.
한편 이혁재 LG에너지솔루션 북미지역 총괄은 16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 업계 행사에서 "모든 사업장에서 고객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며 공장 건설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으며, 현재 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숙련된 한국 근로자들의 미국 입국이 더 수월해지도록 비자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번 사태로 이 문제가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어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K배터리 업체들은 하루속히 비자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B1 비자에 대한 한미 간 해석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배터리 업체들은 B1 비자로 '장비 설치·교육·회의 참석' 등이 모두 가능한 것으로 이해해왔다. 미 국무부 외교 업무 매뉴얼을 따랐고 주한 미국 대사관과도 소통한 결과라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 317명 중 146명이 B1·B2 비자 소지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미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K배터리 업체 모두에게 동일한 상황"이라며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확대되기 전에 양국 간 비자 제도 개선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