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철원 최전방 부대에서 발생한 하사 총기사망 사건에서 상급자들의 괴롭힘 정황이 드러나 민간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육군수사단은 16일 "철원군 소재 모 부대 하사 총기사망 사건을 조사한 결과, 상급 간부들이 사망자에게 욕설과 잔혹행위를 가한 흔적을 확인했다"며 "사망 원인과 연관된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강원경찰청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3일 오전 7시 17분경 철원 지역 육군 2군단 예하 15사단 초소에서 A 하사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군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에 긴급 이송했으나 같은 날 오전 9시 31분경 숨을 거뒀다. 현장에서는 총성이 들린 직후 동료들이 A 하사를 발견했으며, 타인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 자료에 의하면, 사망한 A 하사는 초소에서 함께 생활했던 30여 명의 동료 중 부소대장과 분대장을 포함한 5명의 상급 부사관들로부터 지속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 의원은 "임무 수행과 관련된 숙지사항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사망자에게는 집단적 억압과 심리적 잔혹행위로 발전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대장이 정기적으로 장병들의 애로사항과 생활실태를 점검하는 '신상정리' 시간을 제대로 운영했음에도 이러한 징후를 미리 포착하지 못한 것은 지휘체계의 허점이자 예방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고 유 의원은 비판했다. 그는 "총기 통제와 장병 고충 관리가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초소에서 일어난 이번 참사는 국민들에게 군의 안전관리 역량과 전반적 신뢰성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육군수사단은 민간 수사당국의 조사에 전면 협력하겠다며, 사망자의 초소 배치 과정과 규정 준수 실태에 대해서는 별도로 계속 확인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2년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인 사망사건에서 잔혹행위 등 범죄 의혹이 제기될 경우 군사경찰은 민간 수사기관으로 사건을 이관해야 한다.
최근 군 내에서는 총기를 이용한 사망사건이 연속 발생하고 있다. A 하사 사건 10일 후인 지난 2일 대구 수성못 산책로에서 육군 3사관학교 B 대위가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B 대위가 남긴 유언장 형태의 메모에는 괴롭힘과 잔혹행위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B 대위 유족들은 유언장에 언급된 관계자들을 경찰에 고소했으며, 군 당국도 범죄 의혹이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넘겼다.
이어 지난 8일 경기 고양시 소재 육군 모 통신부대 중사가 독신자 숙소에서 유서와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됐고, 13일에는 인천 대청도 해병부대 병장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지는 사건이 잇따랐다. 불과 2주 만에 육군 초급간부 3명이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또한 10일 파주 육군 포병부대에서는 폭발효과모의탄이 터져 장병 10명이 다쳤고, 같은 날 제주 공군부대에서도 예비군 훈련 중 연습용 지뢰 뇌관 폭발로 7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같은 사망사고와 폭발사고가 계속 이어지자 국방부는 16일부터 30일까지 '전군 특별 부대정밀점검'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소대급부터 모든 계급에 걸쳐 진행되며, 각 군과 국방부 직할부대의 모든 군인과 군무원이 대상이다. 병영생활과 교육훈련 및 작전활동 중 발생 가능한 사고 예방, 총기와 탄약 관리 및 장비·물자·시설 안전점검, 환자 발생 최소화와 응급의료 관리체계, 정신건강 관리시스템 점검이 핵심 과제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번 점검은 장관 지시에 따라 실시하는 것"이라며 "면밀히 검토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철저히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본립도생의 마음가짐으로 기초와 기본에 충실하고, 장병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건전한 병영문화 조성과 맞춤형 자살예방 대책 등 제도적 방안을 시행해 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