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직원 1,200여 명이 검은 옷을 입고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였다.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침에 맞선 강력한 반발이었다. 이들은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이 금융소비자 권익을 해치고 관치금융을 되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는 18일 정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진행했다. 평소 금감원 로비에서만 개최하던 항의 행동을 국회 인근으로 확대하며 본격적인 장외 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집회 장소는 당초 국회 정문에서 예정됐으나 참가 규모를 감안해 300m 거리의 산업은행 본점으로 이동했다. 금감원 직원들의 국회 인근 대규모 시위는 2008년 금융감독기구 개정 반대 집회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현장에 모인 직원은 1,200여 명(주최 측 집계)으로, 금감원 전체 인원(2,400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들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집회에 동참했다. 검은 상의와 빨간 머리띠를 착용한 채 피켓을 든 이들 중 일부는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기도 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결사반대' '관치금융 저지하고 금융소비자 지키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번 조직 개편이 '기관장 자리 분배'를 위한 경제관료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의 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선임조사역 A씨는 "누군가(방송인 김어준 등)는 불만이면 떠나라고 하지만, 너무 안이하고 쉬운 해결책"이라며 "서민 금융 안전망을 외면할 모피아들을 두고서는 도망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 측은 성급한 입법 추진이 진행되고 있다며 합리적인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성명에서 "금감원장 지시로 입법대응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으나 이틀 내에 법안 50여 개, 조문 9,000개 이상을 검토해야 한다"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 개악을 위한 급작스러운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윤태완 노조 비대위원장은 "이번 개편안은 금융감독기구를 관료들의 영향 하에 두어 소비자 보호를 약화시키고 금융시장 안정성을 해치는 위험한 결정"이라며 "김은경 전 금감원 소비자보호처장 등 국정기획위원회 구성원, 각계각층 전문가, 금감원 구성원 등이 민주적 논의 공간에서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 수뇌부와 임원들이 조직 정비에 나섰으나 내부 반발은 오히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비대위는 첫 총파업 카드까지 검토 중이다. 시점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는 25일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야당 인사인 만큼 여야 협의가 결렬되면, 여당이 의견 수렴 과정을 생략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때가 집단행동에 나설 최적기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관계자는 "총파업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파업을 위한 법적 절차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