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과의 무역협상 후속 협의를 위한 방문을 마치고 14일 오전 귀국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 협의를 진행했으나 핵심 쟁점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돌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 장관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협상 결과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양자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만 답변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양측 통상당국도 장관급 회담 후 별도 발표나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주요 현안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협상의 핵심은 지난 7월 합의된 3500억 달러 규모 대미투자 패키지의 구체적 운용방식이다. 당시 양국은 미국의 대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고, 우리 정부는 총 3500억 달러의 투자협력 펀드를 조성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구조와 수익배분, 투자처 선정권한 등 세부사항을 둘러싼 견해차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 측은 직접투자 비중을 최소화하고 대출 및 보증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실질적인 현금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대상 결정에서도 미국이 주도권을 쥐려 하지만, 한국은 기업의 자율적 사업성 판단에 따른 투자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수익배분 문제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 체결한 협정을 예로 들며, 투자금 회수 전까지는 수익을 50대 50으로 나누되 회수 이후에는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를 한국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같은 조건이 불합리하다며 수용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러트닉 장관은 김 장관과의 회동 하루 전인 11일 CNBC 방송에 출연해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25% 관세를 감수해야 한다"며 "유연성은 없다"고 압박했다. 일본이 이미 합의문에 서명했다며 한국도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은 하지 않겠다"며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대통령실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해 나갈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장관은 이번 회동에서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집단구금 사태와 관련해서도 우려를 표명하고 비자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 기업들의 안정적인 대미투자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비자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일본은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16일부터 자동차 관세를 15%로 적용받게 되지만, 한국은 여전히 25%의 높은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양국간 입장차가 워낙 커서 단기간 내 타결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조선업 협력 등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들을 활용해 보다 유리한 협상안을 도출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협의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