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인당 GDP, 22년만에 대만에 역전 위기…"반도체 주도권이 운명 가른다"

2025.09.14
한국 1인당 GDP, 22년만에 대만에 역전 위기…"반도체 주도권이 운명 가른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이 대만에 밀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 3만7430달러, 대만은 3만806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2003년 이후 22년간 유지해온 우위가 무너질 전망이다.

양국 간 경제력 격차는 2018년만 해도 1만달러에 근접했으나, 이후 빠르게 축소되어 지난해에는 한국 3만5129달러, 대만 3만3437달러로 근소한 차이만 보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대만의 급성장 배경에는 글로벌 AI 반도체 특수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대만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8.01% 성장하며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수출이 인공지능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만 당국은 이에 힘입어 연간 성장률 전망을 3.10%에서 4.45%로 크게 상향했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전분기 대비 0.7%, 전년 동기 대비 0.6% 성장에 그쳤다. 건설투자 위축과 고용 불안정,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우려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0.9%, 1.8%로 전망했는데, 이는 OECD 기준 잠재성장률 1.9%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상황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2026년 1인당 GDP 4만1019달러를 달성해 역사상 처음으로 4만달러 고지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은 같은 시기 3만8947달러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역전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산업정책의 차이를 지적한다. 상명대 이종환 교수는 "대만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사업으로 지정해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 인프라에 집중 지원해왔다"며 "최근에는 첨단 공정 연구와 해외 인력 유치, 미일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구조임에도 정책 일관성 부족과 투자 부진으로 경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의대 집중 현상으로 인한 이공계 인재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원화 약세도 격차 확대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초반에서 지속될 경우 대만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노무라증권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대만의 잠재성장률이 3%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반면, 한국은 2% 미만에 그칠 것"이라며 "양국 소득 격차가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1인당 GDP 4만달러 달성 시점도 불투명해졌다. 2018년 당시 2023년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던 전망은 빗나갔고, 현재는 2027년에서 2029년 사이로 예상되고 있다. 환율 동향과 성장 경로에 따라 달성 시기가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종환 교수는 "반도체는 이제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이 된 만큼 정부의 전략적 역할이 중요하다"며 "전력과 공업용수 등 인프라 사전 확보, AI 반도체 투자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