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美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개설 공식 제안

2025.09.14
한국 정부, 美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개설 공식 제안

미국이 한국에게 3천500억달러 대미투자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미측에 공식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관세협상 합의 이후 미국이 펀드 내 현금 직접출자 규모 확대를 요구하자,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필수 방어막으로 통화스와프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14일 대통령실 및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통상협의에서 무제한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요청했다. 기획재정부는 "대미투자 협상 진행 중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화스와프는 비상상황 발생시 자국 화폐를 상대방에게 예치하고 사전 약정된 환율에 따라 상대국 통화를 차용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가 이런 협상카드를 제시한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자금 조달 과정에서 외환시장 급변동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3천500억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4천163억달러의 84%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통화스와프 장치 없이 미측 요구를 따를 경우 원화가치가 1천원대까지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우리나라가 연간 조달 가능한 달러 규모는 200억~300억달러에 불과하다"며 "외환시장 충격에 대해 미국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준기축통화국 지위도 없고 외환보유액도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한미 통화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두 차례만 한시적으로 체결됐다가 2021년 만료됐다. 당시 체결 직후 원화가치와 코스피가 급등하는 등 시장 안정화 효과가 즉각 나타났었다.

다만 미국이 비기축통화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는 전례가 거의 없어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보유한 국가들은 일본, 유럽연합, 영국, 스위스, 캐나다 등 주요 기축통화 보유국들에 국한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이번 제안이 미국의 과도한 직접투자 요구에 맞서는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