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소재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한 분만사고로 신생아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자, 담당 산부인과 의료진이 6억5천만원의 손해배상 판결과 함께 형사재판에 회부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해당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근무하던 의사로 밝혀지면서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해당 병원 산부인과 A교수와 당시 3년차 전공의였던 B전문의는 지난 8월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2018년 12월 진행한 분만 과정에서 태어난 아기가 뇌성마비를 앓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8년 12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신 말기였던 C씨는 진통을 느껴 자신이 다니던 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오전 8시부터 분만유도제 투여를 시작했으나, 오후 1시경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정상 범위(분당 120-160회)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 관찰됐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에 대한 특별한 대응 없이 무통분만 시술을 진행했고, C씨는 오후 3시 41분 자연분만을 통해 출산했다.
출생 직후 아기는 자발적 호흡이 없고 전신이 파래지는 증상을 보였다. 이후 저체온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중증 뇌성마비 판정을 받아 평생 타인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C씨는 2021년 병원 측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24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분만유도제의 성급한 투여, 태아 심박수 이상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무통주사의 부적절한 사용 등을 과실로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판결에서 의료진의 일부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분만유도제나 무통주사 사용 자체는 의료진의 합리적 판단 범위 내라고 봤지만, 태아 심박수 감소에 대한 관찰과 대응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오후 2시 15분부터 지속된 심박수 감소에 대해 응급 제왕절개를 고려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다는 전문의 감정 의견을 받아들였다.
당시 진료기록에는 심박수 이상에 관한 기록이 단 2건뿐이었고, 전공의가 교수에게 보고한 문자메시지도 "분만 준비하겠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에 교수는 "네" "확인" 정도로만 응답했다.
재판부는 "적절한 관찰과 평가가 이뤄졌다면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를 통해 신속한 분만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의료진 책임을 30%로 제한해 6억5천만원 배상을 명령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의료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산부인과학회, 그리고 30명의 젊은 산과 교수들이 연이어 성명을 발표하며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형사기소는 명백히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상존하는 의료현장에서 결과 중심의 형사처벌은 의료진의 진료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C씨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서 의료과실에 대해 누구보다 이해하고 용서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형사고소까지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자단체는 "병원 측이 여전히 의료과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송과 형사고소뿐"이라며 "피해자가 형사고소 없이도 울분을 해소하고 신속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러한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 환자대변인 제도를 도입했으며, 7월에는 불가항력적 분만사고 국가보상 한도를 기존 3천만원에서 최대 3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또한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설명 의무 법제화와 사과 표시의 법적 면책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의료계 반발로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의료진도 환자가 되면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료분쟁 해결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근본적인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어, 향후 보다 실효성 있는 해결책 마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