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검독수리 번식지, 한라산 절벽에서 77년 만에 확인

2025.09.17
멸종위기 검독수리 번식지, 한라산 절벽에서 77년 만에 확인

세계적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검독수리의 번식 서식지가 제주 한라산에서 77년 만에 공식 확인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17일 한라산 북쪽 지역 절벽에서 검독수리 암수 한 쌍과 새끼의 서식 둥지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작년 7월 제주대학교 야생동물구조센터가 한라산 인근에서 어린 개체를 구조한 사건과 지역 주민들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구조된 개체는 1세 미만으로 추정됐지만 사흘 후 폐사했다.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의 허가를 받아 올해 4월부터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와 함께 서식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한라산 북쪽 약 90미터 높이 절벽 3분의 1 지점에서 직경 약 2미터, 높이 약 1.5미터 규모의 거대한 둥지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5월 망원카메라를 이용해 2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검독수리 부부와 새끼 한 마리가 서식하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촬영했다.

둥지는 마른 가지들을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로, 내부에는 마른 풀잎과 푸른 솔가지가 깔려 있었다. 연구진은 성체들을 최소 6년생 이상의 성숙한 개체로 판단했으며, 새끼의 성별은 외형상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7월 재조사에서는 가족이 둥지를 떠난 것을 확인했다.

이번 발견은 1948년 미군 육군 장교 로이드 레이먼드 울프가 경기도 예봉산과 천마산에서 번식 둥지를 확인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울프는 한국인 가이드 김훈석씨와 함께 발견한 내용을 1950년 미국 조류학술지 '디 오크'에 게재한 바 있다.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검독수리는 날개를 완전히 펼치면 2미터를 초과하는 대형 맹금류다.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 전역에 분포하며, 국내에서는 주로 겨울철 산야와 습지 주변에서 소수만 관찰돼 왔다. 사슴, 토끼, 고라니 등 포유동물과 오리, 꿩 등 조류를 주요 먹이로 삼으며, 동물 사체도 섭취한다.

번식기는 1~2월로 1~4개의 알을 산란하며, 44~45일간의 포란 기간을 거친다. 부화 후 새끼를 기르는 육추 기간은 70~102일에 달한다. 197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2012년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분류됐다.

연구진은 검독수리가 번식 장소를 쉽게 변경하지 않는 특성을 고려할 때, 향후에도 동일 지역에서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강승구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기존에 발견된 개체들은 러시아 등지에서 월동차 내려온 철새였지만, 이번 발견은 우리나라에 정착한 텃새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립생태원은 이번 발견을 계기로 제주도 등 관련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서식지 보전을 강화하고, 번식 상황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체 기원 연구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이번 번식 둥지 확인은 학술적·역사적으로 중대한 가치를 지닌다"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 환경 보전과 장기적인 보호 방안 수립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