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해외 특허 사용료 과세권 33년만에 인정…"수십조 세수효과 기대"

2025.09.18
대법원, 해외 특허 사용료 과세권 33년만에 인정…"수십조 세수효과 기대"

대법원이 해외에만 등록된 특허라도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되면 과세가 가능하다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지난 30여년간 지속된 미국 특허회사들과의 조세 분쟁에서 국세청이 최종 승리를 거둔 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92년 이후 33년간 유지되어온 대법원 판례를 근본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원합의체는 "한미조세협정상 특허의 활용이란 특허권 자체가 아닌 특허기술의 실질적 이용을 뜻한다"며 핵심 판단근거를 밝혔다. 또한 "특허기술의 활용은 특허가 어느 국가에 등록되었는지와 무관하게 어디서든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반도체업체인 SK하이닉스가 2011년 미국업체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한 후 2013년 화해하면서 연간 160만달러의 특허사용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에서 시작됐다. SK하이닉스는 2014년 사용료 지급 시 법인세 3억1천만원을 원천징수하여 납부했으나, 해당 특허가 국내에 미등록되었다는 이유로 세금환급을 요구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을 적용해 SK하이닉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유효하므로 미국에만 등록된 특허는 국내에서 활용될 수 없어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수의견(대법관 10명)으로 "특허의 활용이란 특허권이 아닌 특허기술의 이용을 의미한다"며 종래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특허기술은 등록국가와 상관없이 어디서든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미국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제조에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면 그 대가에 대해 한국이 과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노태악·이흥구·이숙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특허의 활용은 등록국가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한미조세협정상 국내 미등록 특허의 활용이 해당 특허권이 적용되는 국가영역 내에서 이뤄지는 특허발명의 실시만을 뜻한다는 전제로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경우 국내활용 자체를 상정할 수 없다고 봐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라이센스 대상 특허의 등록지역과 관계없이 해당 특허의 기술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실제 활용했다면 이는 특허의 국내활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미국회사가 그에 대해 지급받은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으로서 국내 과세권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결정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들이 매년 해외업체에 지급하는 막대한 특허사용료 분쟁 해결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그간 2008년과 2019년 법인세법을 개정해 과세근거를 마련해왔지만 대법원의 소극적 해석으로 과세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제 미국 특허업체들의 사용료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가 가능해져 대규모 세수증대 효과와 함께 국부유출 방지효과도 기대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인 불복 등의 세액만 계산해도 4조원을 초과하는 규모인데 판례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모두 해외로 지급되어야 할 세금"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특허사용료 지급은 현재 불복중인 사업연도 이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십조원의 세수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국내 원천지국 과세권 행사가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결정을 받기 위해 국제조세 전문가, 지식재산권 전문 법무사 등 맞춤형 소송대리인을 선임하고 내부 법무사, 소송수행자 등과 함께 대응논리를 보완하고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등 오랜기간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국부유출을 차단하고 정부의 정책추진에 밑바탕이 되는 국가재원 마련을 위해 정당한 과세처분을 끝까지 유지하고 국내 과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