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앞바다가 영화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시아 최대 영화축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7일 성대한 막을 올리며 열흘간의 성대한 항해에 돌입한다.
이번 영화제는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시내 7개 극장 31개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전 세계 64개국에서 보내온 공식 초청작 241편을 비롯해 관련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총 328편의 작품이 관객들과 만난다. 특히 세계 첫 공개작인 월드 프리미어만 90편에 달해 영화제의 위상을 보여준다.
30돌을 맞은 BIFF의 가장 큰 변화는 창립 이후 최초로 공식 경쟁 부문을 신설한 점이다. 그동안 축제형 비경쟁 영화제를 고수해온 BIFF가 칸, 베니스, 베를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경쟁영화제로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아시아 각국에서 선별된 14편의 작품들이 새롭게 마련된 '부산 어워드'를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대상,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등 5개 부문의 트로피는 세계적 거장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직접 디자인했다.
개막작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역작 '어쩔수가없다'가 선정되어 아시아 프리미어로 선보인다. 최근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과 토론토영화제 국제관객상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반면 폐막작은 별도로 정하지 않고 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이 그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올해 라인업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올 상반기 칸영화제와 하반기 베니스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수상작들이 대거 부산으로 몰려온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심사위원특별상의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의 '구름 아래' 등이 포진했다. 또한 일본에서 실사영화 흥행 2위 기록을 세우며 돌풍을 일으킨 이상일 감독의 '국보'도 주목받고 있다.
참석하는 영화인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탈리아의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가 생애 최초로 아시아 영화제를 찾으며, 현대 누아르의 교과서 '히트'를 만든 마이클 만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할리우드의 기예르모 델 토로, 중국의 지아장커, 그리고 우리나라의 봉준호, 박찬욱 감독까지 세계 영화계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계 3대 영화제' 배우상을 모두 석권한 프랑스의 줄리엣 비노쉬는 15년 만에 부산을 재방문하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도 8년 만에 내한한다.
경쟁 부문에서는 아시아 영화계의 새로운 바람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 감독 비간의 '광야시대', 일본 미야케 쇼의 '여행과 나날', 대만 배우 서기의 연출 데뷔작 '소녀' 등이 눈길을 끈다. 작년 칸과 아카데미상을 동시 석권한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왼손잡이 소녀'도 화제작이다. 한국에서는 한창록의 '충충충', 유재인의 '지우러 가는 길', 임선애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등이 수상 경쟁에 뛰어든다.
대중 친화적 성격도 더욱 강화됐다. 매일 밤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오픈 시네마에서는 접근하기 쉬운 작품들이 상영되고, 넷플릭스 화제작 '케이팝데몬헌터스'는 국내 최초 싱어롱 상영회로 관객들과 만난다. 남포동 비프광장에서 열리는 커뮤니티비프와 부산 전역 15곳에서 진행되는 동네방네비프도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넓힌다.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2025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도 20주년을 맞아 한층 확대된다. 20일부터 23일까지 벡스코와 온라인에서 동시 진행되며, 혁신기술과 콘텐츠 산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선보인다.
30년 전 한국영화 세계화의 꿈을 안고 시작된 BIFF가 이제 또 다른 30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경쟁영화제로의 전환이라는 과감한 변신을 통해 아시아 영화의 맹주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이 부산으로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