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주요 고고학 박물관에서 약 3천년 전 제작된 파라오의 황금팔찌가 흔적 없이 실종되어 이집트 당국이 긴급 수사에 돌입했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한 보물이 복원 작업 도중 갑작스레 사라지면서 이집트 전역이 충격에 빠졌다.
17일(현지시각)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전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위치한 이집트박물관의 복원연구소에서 귀중한 고대 유물이 분실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황금팔찌는 라피스라줄리 구슬이 아름답게 장식된 작품으로, 기원전 993년부터 984년까지 통치했던 제21왕조 파라오 아메네모페의 개인 소장품으로 전해진다.
이 유물은 1940년대 이집트 타니스 지역에서 파라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을 발굴하던 중 발견됐다. 아메네모페 왕은 자신의 원래 무덤이 도굴당한 후 이곳에 다시 안장된 상태였다. 당시 고대인들은 이런 팔찌를 착용하면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성스러운 보물로 숭배했다.
실종 사실은 내달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 예정인 '파라오의 보물' 특별전시회 준비 과정에서 드러났다. 박물관 직원들이 전시용 소장품 목록을 점검하던 중 팔찌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하지만 관광유물부는 정확한 실종 시점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국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해외 밀반출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 모든 공항과 항구, 육상 국경 통과지점에 긴급 경보를 발령하고 팔찌 사진을 배포했다. 아울러 복원연구소 내 모든 유물에 대한 종합적인 재점검을 실시하기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했다.
관광유물부는 "정확한 내부 조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실종 발표를 의도적으로 연기했다"고 설명했지만, 경찰 수사는 이미 시작된 상태다.
실종된 팔찌의 향방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나오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법의고고학 전문가 크리스토스 치로지아니스 교수는 "밀수를 통해 해외로 반출되어 인터넷 플랫폼이나 딜러 갤러리, 경매시장에서 곧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추적을 회피하기 위해 황금을 녹여서 처분하거나 개인 수집가의 은밀한 소장품으로 유통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이집트박물관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고고학 시설 중 하나로, 아메네모페 왕의 유명한 황금 장례 마스크를 포함하여 17만여 점의 고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오는 11월 세계 최대 규모로 개관 예정인 이집트 대박물관을 앞두고 발생해 당국의 유물 관리 역량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