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가전제조업체 월풀이 한국의 삼성전자·LG전자와 중국 하이얼 등 해외 경쟁사들이 수입 신고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기재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부당하게 줄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월풀은 연방정부의 수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은 '언더밸류'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월풀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6월을 기점으로 특정 가전제품들의 세관 신고가격이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의 경우 1~5월 평균 21달러였던 신고단가가 6월 9달러, 7월 8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태국산 가스레인지는 기존 350달러에서 175달러로, 한국산 세탁기는 838달러에서 73달러로 각각 하락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제품의 소비자 판매가격은 신고가격 급락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품목들에는 13~60%의 높은 수입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신고가격이 낮을수록 실제 납부하는 관세액이 줄어드는 구조다.
월풀은 이러한 분석결과를 미 세관국경보호국(CBP) 등 관련 당국과 공유했으나 공식적인 고발 절차는 밟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상무부 법무 간부를 역임하고 현재 월풀의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대니얼 캘훈은 "새 행정부가 관세 회피 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통해 향후 유사한 사기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거부했으며, LG전자는 "미국의 모든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GE 어플라이언시즈는 "관세 관련 법령을 엄격히 지키고 있으며 월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월풀이 언급한 일부 제품은 실제로 수입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건전한 경쟁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이번 월풀의 주장은 자사의 부진한 실적에 대한 불만 표출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월풀은 올해 제품 수요 감소로 인해 주식가치가 20% 가량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약 40%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월풀은 미국 내 판매용 제품의 80%를 자국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향후 국내 생산 비중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관업무 대행업체 카고트랜스의 넌지오 데 필리피스 공동대표는 이러한 통계 이상치가 단순한 입력 착오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6월부터 철강 품목에 새로운 관세제도가 도입되면서 신고 절차가 복잡해져, 일부 관세사들이 제품 수량을 중복으로 계산하는 실수를 범했을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수입량은 증가하고 단가는 급락한 것처럼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월풀은 과거에도 해외 경쟁업체들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문제 삼아 2018년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이끌어낸 바 있으며,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현지에 세탁기 생산공장을 건설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