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칸반도의 알바니아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 기술로 창조된 가상 인물을 정부 장관직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현지시간 12일 사회당 모임에서 '디엘라'라는 명칭의 AI 기반 가상 장관을 공공조달부 수장으로 발표했다고 AFP통신과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태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알바니아어 여성형 이름인 디엘라는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는 디지털 존재다. 라마 총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디엘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세계에서 탄생한 최초의 정부 각료"라고 설명하며, 공개 입찰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부정행위를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통 복식을 착용한 여성의 모습으로 디자인된 디엘라는 이미 정부 업무에 참여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통해 e-알바니아 디지털 플랫폼의 AI 가상 도우미로 개발된 디엘라는 이용자들의 웹사이트 이용을 지원하고 약 백만 건에 달하는 전자 질의와 서류 처리를 보조해왔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3만6천600여 건의 전자 문서 발급과 천여 건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 BBC는 이번 임명이 알바니아 헌법상 정식 절차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헌법 규정에 따르면 정부 각료는 성인이며 정신적 능력을 갖춘 국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대신 AI를 채용한 것은 부정부패 근절 측면에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고 BBC는 덧붙였다.
1990년 공산정권 몰락 이후 조직범죄와 부정부패 척결에 고심하고 있는 알바니아에게 디엘라의 임무는 공공입찰 영역에서 완전한 청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라마 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공공조달 분야의 완전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공개입찰의 모든 잠재적 영향력을 제거하고 과정을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완벽하게 책임감 있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혁신적 시도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를 "말도 안 되는 위헌적 처사"라고 강력히 반박했다. 반면 킹스칼리지 런던의 부패방지·법치주의 전문가 안디 호자즈는 "AI는 여전히 새로운 수단이지만 적절히 설계된다면 온라인 입찰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요건과 기준을 만족하는지 더욱 정확하고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4선에 성공한 라마 총리가 2030년까지 달성하려는 EU 가입 목표에도 이번 조치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부문 부패 퇴치는 알바니아의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AI 기반 행정 디지털화가 투명성 제고와 부패 근절에 실질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