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규제 당국이 미국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대한 반독점 위반 혐의로 본격적인 추가 수사에 돌입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진행 중인 미중 제4차 고위급 무역협상 기간 중 나온 이번 결정은 양국 간 경제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이날 공식 SNS를 통해 "사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엔비디아가 중화인민공화국 반독점법 및 멜라녹스 테크놀로지스 지분 매입에 관한 조건부 허가 심사 공고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관련 법령에 근거해 심화 수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공표했다.
문제가 된 것은 엔비디아가 2019년 이스라엘 네트워킹 장비 전문업체 멜라녹스를 약 70억 달러에 매수한 건이다. 당시 중국 측은 합병 허가 조건으로 그래픽처리장치 가속기와 멜라녹스의 고속 네트워크 연결 장비, 연관 소프트웨어 및 부속품을 중국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할 것을 명시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이후 워싱턴 정부의 수출 제한 정책을 이유로 중국향 GPU 가속기 제품 공급을 단절시켰고, 베이징은 이를 계약 위반으로 간주해 작년 12월부터 관련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번 발표 시점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 양국 대표단이 마드리드에서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는 바이트댄스 소유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권 매각, 마약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 관세 정책 등이 핵심 현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협상 직전부터 양측의 견제구는 계속됐다. 미 상무부는 지난 12일 GMC반도체, 지춘반도체 등 중국 기업 23곳을 신규 수출규제 대상에 포함시켰고, 중국 상무부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아날로그디바이시스 등 미국 아날로그 집적회로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반덤핑 수사를 개시하며 맞대응했다.
이러한 패턴은 지난 회담들에서도 반복됐다. 제네바에서 열린 1차 회담 이후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고, 미국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H20칩 수출 금지로 응답했다. 런던 3차 회담에서는 엔비디아 수출 허용과 희토류 수출 제한 해제를 맞교환하는 타협이 이뤄지기도 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엔비디아 추가 조사 발표가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압박 수단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반독점법에 따르면 위반 기업에게는 전년도 매출액의 1-10%에 달하는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 엔비디아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위상 제고를 위해 자국에서의 정상회담 개최를 원하고 있으며,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에 상응하는 실질적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번 협상이 중국의 진정한 양보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첫날 6시간에 걸쳐 진행된 협상에서는 틱톡 문제를 포함해 대부분의 쟁점이 논의됐으나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각자의 핵심 이익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카드를 꺼내든 중국의 행보에 협상 분위기는 더욱 경직될 것으로 예상된다.